수출 계획은 부품을 고르기 전에 말해 주세요
규제 때문에 멈춘 프로젝트를 두 번 겪었습니다. 둘 다 기술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였습니다.
제품을 만들다 멈춘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. 그중 두 번은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. 규제 때문이었고, 둘 다 알아채는 시점이 늦었습니다.
첫 번째는 앨범에 넣는 소형 미디어 플레이어였습니다. 기성 보드에 안드로이드를 올려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습니다. 그러고 나서 고객사가 해외 수출 계획을 꺼냈습니다. 미국 수출 규제 때문에 중국 SoC를 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.
이 값대의 소형 기기에서 쓸 만한 SoC는 대부분 중국산입니다. 규제를 피하려면 다른 칩을 골라 보드를 새로 떠야 합니다. 보드를 새로 뜨면 설계비와 금형비가 붙고, 그 비용은 생산 수량으로 나눠야 회수됩니다. 계획한 수량으로는 단가가 맞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거기서 멈췄습니다.
두 번째는 무선 신분증 스캐너였습니다. 매장에서 선 자리에서 개통까지 마치려면 스캐너가 무선이어야 했습니다. 신분증을 다루니 무선 구간을 그냥 둘 수 없어 HTTPS와 VPN으로 보안을 갖췄습니다. 고객사 확인까지 마쳤습니다. 기술적으로는 끝난 물건이었습니다.
그런데 국가기관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무선 신분증 스캐너는 사용할 수 없다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. 다 만든 제품이 쓰이지 못하고 끝났습니다.
두 번 다 같은 모양입니다.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. 쓸 수 있느냐가 문제였고, 그것을 늦게 알았습니다.
규제는 왜 늦게 나올까요. 기획할 때는 대개 "일단 국내부터"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. 수출은 잘되면 그다음에 생각할 일로 미뤄 둡니다. 그런데 부품은 그 순간에 이미 정해집니다. 나중에 수출 이야기가 나오면 되돌릴 것이 부품밖에 없습니다.
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이 세 가지만 짚어 두시길 권합니다.
어느 나라에 팔 계획인가. 지금이 아니라 2~3년 안에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포함해서요. 이 답 하나가 쓸 수 있는 부품의 범위를 정합니다.
그 나라에서 이 제품이 규제 대상인가. 통신 기기라면 전파 인증, 개인정보를 다루면 그 나라의 관련 지침, 수출이라면 원산지 제약. 제품마다 걸리는 곳이 다릅니다.
그 확인을 개발과 나란히 굴리고 있는가. 개발이 끝난 뒤에 알아보면 그때는 되돌릴 것이 없습니다. 프로토타입이 나오기 전에 답을 받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.
이 세 가지는 몇 시간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. 그 몇 시간이 없어서 두 번 멈췄습니다.